전문 프리랜서, 이걸 사람들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이유

나는 미술학원을 다녀 본 적이 없다. 그림을 그릴 때 특이한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핸드폰 앱을 켜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리는 게 전부다. 테블릿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똑같은 조건이다.

그림은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그렸다. 그럴 때부터 이제까지 그림 실력은 어떤 방식으로 변했을까. 같은 지금세대를 그린 그림들을 찾아봤다. 헝가리 출신 모델 바바라 팔빈이 있을 것이다. 팔빈은 아마 그대로였을 텐데, 내 사진 속 팔빈은 변했다. 변한 건 내 사진 실력일테다.

어렸을 적부터 내 사진을 본 부모님의 현상은 한결같았다. 아빠는 엄청나게 감탄하면서 주변 청년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내 그림 자랑을 하셨다. 고맙긴 한데, 미술 전공자에게까지 자랑할 때는 좀 머쓱하기도 했다. 때문에 나를 아는 노인들은 모두 내가 그림도 그린다는 걸 안다.

처음부터 잘 그렸을 리 없지만, 아빠의 칭찬 덕에 나는 진짜 내가 사진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믿었다. 팔빈을 첫 번째, 두 번째 그렸을 때까지 그랬다. 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환상 속에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그렸을 때, 그 때 비로소 내 사진 실력을 의심해보기 실시했다. 더 노력해야겠구나, 더 연습이 필요하구나, 마음하였다. 아마 앞으로 네 번째 팔빈 얼굴을 또한나면, 한 번 더 그 사실을 깨달으리라는 걸, 지금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피아노 연주도 유사한 공정을 거친다. 처음으로 연주했을 때 큰 만족을 얻는다 한들 두 번째 연주 바로 이후엔 아쉬움만 방치된다. 그렇게 몇 번의 아쉬움을 겪고나야 그나마 뭔가 이뤄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정하게 무대에 올라야 한다.

올해 5월 신년음악회에서 선우예권 오빠와 라벨의 '라 발스(La valse)'를 연주했을 때의 일이다. 응원 와주신 월간 '객석'의 김기태 대표님께서 재능마켓 '우리 잡지의 ‘아티스트 에세이’ 코너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석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다른 젊은 음악가들의 긴 글을 보고 필자 형태을 내가 그려보라는 제안이었다.

나의 대답은 당연히 '네'였다. 그 때만 해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책임이 이후 따르는 일파악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저 재미있겠다, 흥미롭겠다,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더 강했었다. 솔직히 오늘날 내 사진 실력을 마음하면 사양하는게 맞다 싶지만, 그 때 그 확정은 내 사진 실력을 더 키우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 앞에는 ‘피아니스트’란 단어가 꼭 따라 붙는다. 오늘날 당신이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보며 연습한다면,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피아니스트다. 정석대로 배우지 않아서, 아직은 실력이 부족해서, 똑같은 이유로 자신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면, 나는 피아니스트이지만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안다. 내 사진은 지금도 크게 부족하고 더 크게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나도 그림을 그린다. 첫 발을 내딛지 않으면 시작조차 불가능하다. 첫 발을 내디뎌야 내 가능성을 가늠해 볼 기회라도 보여지는 것이다. 무턱대고 나서란 얘기가 아니다. '예'라고 대답했다면, 거기에 걸꼭 맞는,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영화 '반지의 제왕' 가운데 '왕의 귀환'편을 훑어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의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search/?query=프리랜서 용기가 무너질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다.' 꿈꾸는 것을 이루지 못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노력할 대비가 되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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